반항과 혁신으로 빛난 패션 하우스의 시작
프랑스 파리의 세련된 거리에서 시작된 ‘생로랑(Saint Laurent)’은 명품 브랜드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 브랜드는 디자이너 이브 생로랑(Yves Saint Laurent)의 독창적인 감성과 패션 철학을 통해 탄생했습니다. 그의 이름을 딴 이 브랜드는 창립 초기부터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패션계를 뒤흔들었고, 지금까지도 전통과 혁신을 조화롭게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생로랑의 화려한 이면에는 어떤 숨겨진 이야기들이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 창립자, 이브 생로랑의 천재성과 고난
이브 생로랑은 어린 시절부터 비범한 감각을 지닌 아이였습니다. 18세에 파리로 건너가 패션 학교에 입학한 그는 재학 중에 '크리스천 디올'의 눈에 띄어 디올 하우스에 입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불과 21세의 나이에 디올의 후계자로 발탁되어 컬렉션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브 생로랑에게도 고난은 있었습니다. 알제리 전쟁으로 인한 군 복무와 그로 인한 정신적 충격으로 한동안 패션계를 떠나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던 그는 1961년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 ‘입생로랑(Yves Saint Laurent, YSL)’을 설립하며 다시 패션계로 화려하게 복귀합니다. 그의 천재성은 다시 한번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2.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시대를 이끌다
생로랑은 브랜드 설립 이후부터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는 대담한 디자인으로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특히 여성용 팬츠 수트인 ‘르 스모킹(Le Smoking)’은 당시 사회적으로 여성의 바지 착용이 흔하지 않던 시기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 디자인은 여성에게도 남성처럼 권위와 자신감을 표현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패션계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생로랑은 몬드리안 드레스, 사파리 룩, 파워 숄더 재킷 등 시대를 앞서가는 작품들을 연이어 선보이며 명성을 확립했습니다. 그의 디자인은 옷 이상의 의미를 지녔으며, 많은 여성들에게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게 해 주었습니다.
3. YSL에서 Saint Laurent로, 새로운 시대의 시작
2012년, 디자이너 에디 슬리먼(Hedi Slimane)이 생로랑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부임하면서 브랜드는 큰 변화를 맞이합니다. 브랜드명을 기존의 Yves Saint Laurent에서 Saint Laurent로 변경하고, 로고와 컬렉션에도 현대적인 감각을 더했습니다. 일부 팬들은 이러한 변화에 아쉬움을 표했지만, 결과적으로 생로랑은 전 세계 젊은 소비자들에게 더욱 친숙한 브랜드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이후에도 안토니 바카렐로(Anthony Vaccarello)가 디렉터를 맡으며 섬세하면서도 대담한 디자인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브랜드는 과거의 유산을 존중하면서도 새롭게 변화하는 패션 트렌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전설로 남은 생로랑의 가치
생로랑은 고급스러운 명품 브랜드를 넘어선 상징적인 존재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브 생로랑의 개성과 철학, 그리고 후계자들의 노력이 더해져 지금의 생로랑이 만들어졌습니다. 수많은 고난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걸었던 이브 생로랑의 정신은 현재에도 여전히 브랜드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유니크한 디자인과 세련된 감각으로 생로랑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브랜드입니다.